Joseph Lee Joseph Lee

온주총리 집앞서 식칼 소동

*<온주총리 자택 앞서 식칼 소동>

덕 포드.jpg

월요일 밤 덕 포드 온주총리의 에토비코 자택 앞에서 대형 식칼 든 괴한이 고함 지르며 난동 부리다 출동한 OPP에 체포…

별다른 피해는 없음…

포드 총리 집 앞에선  심심찮게 시위가 벌어짐…

https://www.cp24.com/news/man-wielding-large-butcher-s-knife-arrested-outside-premier-doug-ford-s-etobicoke-home-1.5480685

Touch Cash.jpg
Susan Lee- 2.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스코샤뱅크어레나에 대형 백신 클리닉

*<오늘의 코로나> 6월 21일

스코샤뱅크.jpg

온타리오 신규확진자 270명, 사망 3명, 양성률 2.5%...

토론토 47, 워털루 44, 필 42, 욕 22…

토론토 스코샤뱅크어레나에 초대형 백신 클리닉 설치, 27일(일) 하루동안 1만명 접종 계획…

https://www.cp24.com/news/scotiabank-arena-becoming-covid-19-vaccine-pop-up-next-weekend-10-000-doses-available-1.5478725

Pyunghwa Food.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82

<행복을 찾는 길은 2>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추상적인 두 글자에 잘 살았다 잘 못 살아 가고 있다 성공을 했다 그 사람 참 남 보기에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럽게 느껴진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이 추상적인 행복이란 길을 찾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의 삶은 잘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 왔는가. 뒤를 돌아 보지는 말고 앞만 보고 아름다운 꿈과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 가고자 하지만 뒤 돌아 보지 않고 살아 갈 수 없는 우리네 생존을 가끔 반추를 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우리네 인생이란 과거를 반추하기에 아름다운 미래를 구상 할 수 있으리라. 과거를 잊어버리고 살아 갈 수만은 없는 것이 생존의 길이지 않는가.

 나대로의 행복의 비결은 세계 제일의 부자인 "월 마트 창업자 샘 월튼"도 아니고 "변 강쇠"가되어 "양 귀비"와 아름답게 하루 저녁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그져 행복이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을 찾는 길은 내 마음가즘에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행복이란 구하거나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불만을 없에고 욕망을 절제 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즉 사랑이 있으면 행복이 오고 행복이 있으면 사랑이 올 수 있으리라 나아가 만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이는 행복중 행복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명예 사랑 돈 이 모두가 자기만족의 범주에 있기에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이 앞만 보고 자기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길이 우리 같은 민초들의 행복론의 범주라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무소유가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속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집을 탐독하며 스님같은 분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끝으로 무소유의 행복론을 제창하며 무소유라는 자작시 한편을 남겨볼까 한다.

<<인생살이 다 털어 버리고 나면/모든 것이 내 것인 것을/파아란 하늘에 눈물 떨구며 /내 마음 담그고/깜짝 놀라 뒤를 보면/무한의 서러움/꿈 속을 걸어가네/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황혼의 서녘하늘/두눈 부릅뜨고/찢어져 내리는 눈물/ 내 죽어 묻힐 행복길 만리/ /죽어 간 영혼 버리고/우리가 살아 왔다는/내가 너처럼 행복했다는/ /침묵 속의 피안/내 몸을 난자하는/ 애증의 파도여/>>

민초 이 유식 시인 2021년 중순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악명 높은 원주민 기숙학교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 원주민 기숙학교>

원주민 기숙학교.jpg

BC주에 이어 온타리오도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집단 학살된 어린이 유해 발굴사업 추진…

덕 포드 총리, 3년간 1천만 달러 들여 유해발굴-희생자 추모사업 등 지원 계획 발표…

온주는 1991년까지 총 18개의 원주민 기숙학교가 운영됨…

https://www.thestar.com/politics/provincial/2021/06/15/ontario-government-giving-10m-to-help-locate-unmarked-graves-of-indigenous-children-who-died-at-residential-schools.html

Toyota.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민초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81

<행복을 찾는 길은 1>

이유식.jpg

 신이 인간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은 눈물과 웃음이라 한다. 이 말은 눈물에는 치유의 힘, 웃음에는 건강과 희망이 숨쉬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기쁠 때 몸 안팍으로 쏟아지는 큰 행동이라 한다. 엔돌핀의 극치는 우리의 건강을 강건하게 해주는 이 즐거움은 인간에게 가장 값신 행복이리라. 근래에는 엔돌핀의 4천배를 능가한다는 다이돌핀이라는 것이 인체에 형성되어 있기에 이 다이돌핀을 토해낸다는 것은 힘도 들지만 웃음의 즐거움의 극치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행복의 극치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다이돌핀을 어떻게 생성하느냐하는 마음가짐과 뇌에서 작동하는 몇 억만분의 일의 스위치가 작동을 하는 즐거움의 발휘 이 때에 인간에게는 최대의 행복이 주어진다 한다.즉 남녀가 섹스를 즐길 때 남자는 10초에서 12초사이의 홀몬을 사정할 때의 즐거움 여자는 105초에서 115초 사이의 쾌감, 이 쾌감이 즐거움의 극치 다이돌핀의 발산이라 한다.

 내가 읽은 글 중에서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소망은 쫒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입니다/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속박은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위의 글 중에서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하게 파고드는 것은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이란 말이다. 이는 실제로 내가 5년째 나의 팔목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정상이 아니면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가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는 것을 체념을 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슴을 각인해 준다는 말이다

 역으로 기쁨은 행복을 안겨주는데 행복은 과연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일까를 곰곰히 생각하면 황금 명예 사랑 이 모든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주는 것이지 않을까? 생존의 가치 뜻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 남에게 추앙을 받고 남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 모든 것 내 자신이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사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한 질의 응답은 참 흥미롭다.시간에 쫓기는 사람에게 어이 그리 바쁘냐고 물으면 대답은 행복을 찾고자. 돈 권력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도 물었더니 역시 대답은 행복하기 위하여라는 답이다. 또한 신앙인 에술가 등등에게 물어 보아도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답이다. 간단한 예이지만 자기의 일에 더 열중하고 세상 하직할 때까지 자기를 전부 투자한 사람들이 바라는 답은 무엇일까? 그 답은 행복이란 것을 맛 보고자 했지만 어느 누구도 영속적인 행복을 맛 보지 못하고 종말은 흙으로 돌아갔다는 결론이다. 아멘 아멘. 나무관세음보살,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민초 이 유식 2021년 6월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김민주 자서전>

뿌리 뽑힌 나무(1)

(A woman from the North)

(B8)김민주씨.jpg

김민주(온타리오 레프로이)

 

*본보는 금주부터 김민주씨의 탈북 수기 <뿌리 뽑힌 나무>를 연재합니다. 숱한 죽을 고비를 넘나들며 탈북에 성공해 중국과 한국을 거쳐 캐나다에 도착해 살아가기까지 그녀가 겪어온 고난 극복의 눈물겨운 여정을 통해 한인 이민 독자들께 꿈과 용기를 선사하길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머리말>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당황했고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내가 북한과 중국, 남한을 거쳐 드디어 캐나다에 정착하여 살고는 있지만 내가 캐네디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한사람이라고 하기엔 뭔가 많이 빈약하다. 그럼 나는 북한 사람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북한 사람이 맞다.

 내가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살든 나의 뿌리는 북한이다. 북한과 중국, 한국을 거쳐 드디어 캐나다에 정착하면서 그 나라들의 언어와 풍습,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리 해도 절대 그들처럼 될 수 없었다. 내가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해외를 떠돌며 그 가지와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지나온 내 삶의 뿌리를 조금씩 파헤쳐 보려고 한다.

 내가 살았던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이어 김정은이 3대 세습통치를 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체제와 통치 시스템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 주민들의 삶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토록 어떻게 국가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고 감시 통제되고 있는지, 왜 아직도 북한 인민의 생활은 김일성 시대보다 점점 더 쪼들리고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이해가 되길 바란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망설였다. 내가 유명인도 아니고 성공한 위인도 아니며 더구나 요즘 유행하는 SNS조차 하지도 않는 내가 자서전을 쓰다니, 과연 누가 내 지나온 이야기를 읽으려고 할까? 탈북 엘리트들이 펴낸 수기를 읽어본 적은 있지만 사회 밑바닥까지의 삶을 경험한 나와는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주변에 어떤 캐네디언들은 북한에 대해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을 하면 그 대답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방대하고 심각한 북한의 실상을 사실 한두 시간으로 다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자서전을 통해 ‘신비의 요지경’, 폐쇄국가, 캄캄한 베일에 가려져 있는 가장 비밀스러운 국가 북한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모하고자 한다.

<제1장 나의 소녀 시절>

1. 고향 평양

 나는 1972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6살까지 살았다. 하여 평양에서 보냈던 기억은 한정적이다. 그때는 거의 매일 공습경보(전쟁시 공습경보에 대비한 훈련)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자장가 소리처럼 들으며 자랐다. 내가 사는 한반도는 전쟁을 잠시 멈춘 정전 협정 상태였기 때문에 전쟁에 대비한 훈련은 삶의 일상이 되었다.

 밤에 전기가 끊기고 사이렌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너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리면서 엄마 품을 파고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쟁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대피 훈련, 주민소개훈련, 폭격에 대비한 불빛 막이 훈련은 일상이었다. 북한이 1973년에 1차적으로 완공한 평양 지하철은 수도의 교통 문제 해결과 함께 전쟁이 나면 주민소개 및 대피소로 활용할 목적으로 지하 100∼150M로 깊숙이 건설되었다.

 아버지는 기계공장 기사로 근무하셨고, 엄마는 고등중학교 국문학 교사였다. 부모님 두 분 다 노동당원이셨다. 북한에서 지식인들은 입당이 무척 어려웠는데 입당을 하려고 5~7년 혹은 10년까지도 온갖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며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당원이 될 수 있다. 노동당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핵심분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당원만이 사회적인 지위에 오를 수 있고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사람 축”에 낄 수가 있다.

 결혼할 때 신랑이 비당원이라는 것은 큰 흠이 된다. 비당원들은 결혼대상자를 선택할 때 부족한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자식들 앞에서 부모로서 권위가 위축된다. 우리 부모는 당과 나라를 위해서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 시간은 직장에서 고군분투하였다. 자녀들은 방치하였고, 가정은 뒷전이었다. 주말이나 명절에도 온 가족이 놀러 가거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모님들은 아침 7시에 나갔다가 밤늦게 10시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셨다. 차디찬 냉방에 우리 네 형제가 여기저기 쓰러져 잠에 들면 밤 10시가 넘어 들어온 엄마가 흔들어 깨운다.

 나이 60에 이르러서도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물론 돈 한푼 없이 빈털터리였다. 정년퇴직 후에 엄마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해서 자신들의 아까운 청춘과 인생을 다 바쳐 헌신하고 충성한 것을 몹시 후회하셨다. 나의 부모님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어른들은 다 그렇게 살아왔다.

 나에게 두 언니와 남동생이 있었는데 7~8살 되던 큰 언니가 학교가 끝나면 탁아소에 들려서 나와 동생을 집에 데려오고 손발을 씻기고 먹을 것도 주었다 내가 4살 적에 둘째 언니가 내 발을 씻겨 준다며 펄펄 끓는 물을 바가지로 떠서 다리에 부어버려서 화상을 입었다. 둘째 언니도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5살짜리 꼬맹이라 끓는 물에 화상을 입는지를 알 턱이 없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나의 발등과 다리에는 아직도 그 화상 흔적이 남아 있다.

 한번은 큰 언니가 8살 때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밤 10시에 끝내고 탁아소에 있는 나와 동생을 엄마가 당연히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 왔더니 엄마도 막 그때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엄마는 언니가 탁아소에서 동생들을 데려오지 않았다고 너무 혼내어 큰언니는 울면서 그 늦은 밤에 탁아소에 가서 우리를 데려왔다고 한다. 그 시간까지 우리만 탁아소에 남아 보육원들이 우리를 너무 싫어했다. 우리 때문에 퇴근을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평양에서는 석유곤로(버너)로 밥을 짓거나 구멍탄(연탄)으로 온돌도 덥히고 밥도 해 먹었다. 연탄이 떨어지면 석유로 밥을 해먹었는데 온 집안에 석유 냄새가 진동하고 온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나마 석유까지 떨어지면 밥을 해 먹지도 못하고 배고파도 참고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자애들처럼 모험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해 여름 방학이었다. 탁아소도 방학이라 문을 닫았는데 엄마는 4살 된 나와 두 살배기 동생을 집에 가두어 놓고 문을 잠그고 출근했다. 저녁에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나와 동생은 하루 종일 집안에서 놀아야 했다. 나는 심심하고 뭔가 놀 거리를 찾다가 높은 책상 위에서 엄마가 매일 아침 얼굴에 바르는 크림통을 발견했다. 그것을 얼굴에 바르면 어떻게 될까하고 갑자기 궁금해진 나는 책상 위에 직접 올라가서 얼굴에 발라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책상이 너무 높아 나는 의자를 놓고 올라가 또 책 꽃이 위에 있는 크림통을 잡는 데 성공했다. 뚜껑을 열어봤더니 하얗고 부드러운 크림에서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향기가 풍겨왔다. 나는 손가락을 넣고 휘젓다가 얼굴에도 바르고 바로 그 옆에 있던 손거울도 집어서 들여다보다가 별로 재미가 없어서 그만 내려오려고 하였다. 그런데 의자를 밟고 내려가지 않아도 한번에 뛰어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도 그 장면은 기억이 나는데 나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하나, 둘, 셋에 책상 위에서 바로 바닥으로 뛰어내렸는데 책상이 흔들리면서 크림통이 먼저 땅에 떨어지고 박살이 나 버렸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위에 무릎을 찍으면서 많은 유리 조각들이 다리에 박혀버렸고 피가 흘러내렸다. 문이 밖으로 잠겼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에 도움도 청하지 못하고 학교에 간 언니들이 귀가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학습장(노트) 종이를 뜯어 다리에 감고 실로 동여매고 언니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오후 4시쯤에 큰언니가 돌아와서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얼른 엄마가 일하는 학교에 날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병원에 바로 실려 갔는데 의사 선생이 살에 박힌 무수한 유리 조각들을 다 뽑아내고 엄청나게 벌어진 상처를 실로 끄러 맸는데 칼을 잡고 있던 의사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4살밖에 안 되는 애가 아프다고 울지 않고 견디는 것을 보고 의사 선생님이 크게 놀랐다고 한다. 나는 상처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아끼던 크림통을 박살 내버려서 엄마한테 혼날 것이 더 무서웠고 걱정이 되었다. 그 당시엔 크림 한 통 사기가 힘들었고 한 통으로 아끼고 아껴서 오래오래 써야 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7월 한 여름날, 집안에서 동생과 놀다가 심심해진 나는 장롱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빨간색 겨울 자켓을 발견하였다. 큰 언니부터 물려 입던 여자 옷이었는데 내가 작아서 내 남동생이 물려 입게 된 것이다. 점심시간에 나는 빨간 겨울 자켓을 동생에게 입히고 아래는 벌거벗은 채로 동생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날은 어쩐 일로 문이 밖으로 잠겨 있지 않아 우리는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걸어서 20분 정도에 있는 학교에 다다르니 마침 점심시간 중간 체조 시간이었다. 온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노래에 맞춰 인민보건체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동생 손을 꼭 잡고 줄지어 있는 학생들 사이로 걸어가다가 앞에서 체조를 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기뻐서 소리쳤다. “엄마. 나 의덕이 데려왔어”

 나는 엄마가 길을 잃지 않고 용케 잘 찾아왔다고 칭찬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보고 엄마는 너무 당황하여 얼른 우리들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여름에 겨울 옷을 입고 엉덩잇살을 다 드러내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3살짜리 남동생을 보며 학생들과 교원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때부터 내 동생을 모르는 학생이 없었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모내기철인 5월과 가을철 10월에는 전국의 학생들이 농촌 지원을 나간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 합숙을 하며 바쁜 농번기 일을 돕는다. 엄마도 맡은 학급 학생들을 데리고 한 달간 농촌 현지에서 합숙을 해야 했는데 동생만 데리고 가고 나는 동네의 제일 무서운 할머니에게 맡기곤 하였다. 그 무서운 할머니는 일제시기에 신통방통 소문난 무당이었는데 일본인들도 점 보러 찾아올 정도로 점을 잘 봤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일성이 정치를 하면서부터 종교와 미신을 타파한다고 하면서 모조리 청산하여 함부로 점이나 무당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식도 남편도 없이 홀로 살아온 그 할머니는 생김새가 너무 험악하고 무서워 공포와 두려움의 대명사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무당할멈한테 데려간다고만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한다. 그때 엄마는 내 간식용으로 앙꼬빵을 할머니에게 맡겨 두었는데 할머니는 숨겼다가 매일 1개씩만 꺼내 주었다.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지만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먹어야 한다며 더 주지 않았다.

 나는 몰래 그 할머니가 어디에 숨겼는지 지켜보다가 혼자 꺼내 먹었는데 그만 들키고 말았다. 할멈이 나를 혼냈지만 나는 무서워도 하지 않고 엄마가 날 먹으라고 준 건데 왜 욕을 하냐고 대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 그 할멈은 나에 대해 어떤 예언을 해주었는데 엄마는 미신을 믿으면 반혁명분자로 몰아가던 시기라 귀담아듣지 않아 훗날 몹시 후회를 하셨다. (다음 호에 계속)

Susan Lee- 2.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확진자 감소, 사망자 증가

*<코로나 뉴스 종합>6월 9일

호텔격리.jpg

온타리오 신규확진자 411명으로 계속 감소, 그러나 사망자는 33명으로 증가해 걱정, 양성률 2%...

연방정부, 2차 백신 접종 마친 캐나다인 입국시 2주간 호텔의무격리 면제키로…

https://www.thestar.com/business/2021/06/09/feds-to-lift-14-day-quarantine-requirement-for-fully-vaccinated-canadian-travellers.html

Pyunghwa Food.jpg
Susan Lee- 2.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제1회 시니어 앙상블 연주회

*<주말 공연 안내>

시니어 앙상블.jpg

제1회 한인시니어 앙상블 연주회(온라인)가 주말인 6월5일(토) 오후 8시에 열립니다.

조상두 목사가 지휘하는 이 공연은 75세 이상 시니어들이 모여 그동안 갈고닦은 수준높은 기량을 펼쳐보일 예정입니다.

특히 참가자들은 대부분 성인장애인공동체에서 봉사하는 분들로, 나이에 관계없이 노력하면 된다는것을 확인시켜드릴 것입니다.

<공연 음악> 좋으신 하나님, 작은 불꽃 하나가, 나 주의 믿음 갖고, 기다리는 마음, 오빠 생각, 매기의 추억, 황성옛터  

*유투브를 통해 가족들과 함께 많이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위 포스터 참고.

Susan Lee- 2.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민초 시단

<봄 비가오네>

이유식.jpg

이방의 광야에 봄 비가 내리네

빗소리에 들려오는 꽃잎 피어나는 소리

멀리서 보이는 아름다움이어라

 

빗소리 따라 젖어드는 얼굴 하나

나의 창문을 두들기는 애잔한 웃음소리

꿈은 살아서 창공을 날고 있고

보이는 것은 허무한 얼굴 하나

 

내 마음은 너의 마음

너의 마음은 방황하는 외진 길 언덕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속삭이며

진종일 정처없이 비는 오고 있는데

가야할 길도 와야 할 길도 없는 종착역에서

휘날리는 봄비는 누구를 찾는가

 

외롭다 말하지 말라 빗소리여

시공(時空)의 공간을 파고드는 나의 눈물은

텅빈 방 베갯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여라

 

내 이상의 사랑은 유랑을 하고

봄비와 고독의 창공을 원망하랴

순애의 봄비가 소리없이 내리네             

-민초 이 유식 2021년 5월 초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화제>토론토 탈북여성 자서전 출간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내 인생 스토리”

40대 탈북여성의 기구한 삶 다룬 자서전 출간 

▲저자 김민주 씨

▲저자 김민주 씨

토론토 인근 김민주씨 저 <뿌리뽑힌 나무>  

 토론토 인근 소도시에 거주하는 40대 탈북여성이 ‘아주 특별한’ 자서전을 펴냈다. 책 제목은 <뿌리뽑힌 나무>, 영문제목은 ‘A woman from the North’. 

&lt;뿌리뽑힌 나무&gt; 책 표지

<뿌리뽑힌 나무> 책 표지

 이 책은 생과 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면서도 그때마다 기적처럼 살아난 한 가냘픈 여성이 자유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한편의 감동 드라마다. 각 장면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삶의 순간들이 한편의 스릴러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저자 김민주씨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나 6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다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을 계기로 평양시에서 출신성분이 불량한 자들을 대거 축출할 때 6.25 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큰아버지 때문에 온가족이 함경도의 지방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시밭길 인생이 시작되고 생존의 벼랑끝에 몰렸다.

 그녀는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핏덩이 어린 아들을  압록강 푸른 물결에 잃었고 그녀 자신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겨우 탈북에 성공했으나 중국의 벽촌에서 또다른 궁핍과 멸시를 받으며 살다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남한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남한은 그녀가 적응해 살아가기엔 결코 녹록치 않았다. 특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들(현재 대학생)의 교육문제와 세계시민으로서의 더 큰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해 그녀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책은 제1장 <나의 소녀시절>부터 시작해 제2장 <도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제3장 <우리의 삶은 전쟁터였다>, 제4장 <생사를 넘나들며>, 제5장 <장백산>, 제6장 <인생의 제2막>, 제7장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제8장 <뿌리 내린 나무> 등으로 구성돼있다.

 김씨는 자서전의 영문판도 준비하고 있다. 책을 현재의 남편에게 읽게 하고 싶어서다. 포르투갈-캐네디언인 현 남편은 김씨 모자(母子)가 캐나다 이민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책은 자가편집 플랫폼 부크크(BOOKK)에서 전자책으로 편집됐다.

-정가 2만2,300원.

-책 구입 문의: https://www.bookk.co.kr/book/view/111237  

-알라딘, 교보문고, Yes 24 를 통해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Pyunghwa Food.jpg
Susan Lee- 2.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

원주민 학교.jpg

BC주 캠루프스의 과거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215명의 어린이 유해가 묻힌 대규모 무덤 발견, 전 세계가 큰 충격…

과거 캐나다 원주민들 동화시키기 위해 정부와 종교당국이 설립 운영했던 강제 기숙학교로 1978년에 폐쇄…

원주민 단체-검시관과 함께 사망 원인과 시기 파악 중…

원주민 학교1.jpg
Susan Lee- 2.jpg
Read More
Joseph Lee Joseph Lee

민초 시단

詩 <거미 집>

이유식.jpg


이 인연을 어이 하려나

매일 아침 샤워를 할 때 보이는 거미집

천장 벽 한쪽에 자리잡고 몇 년의 실타래를 풀며 지어올린 집

그 집을 지은 거미의 마음은 나의 마음일 것이다

 

거미야 거미야

나는 어제도 오늘도 너와 만나는 기쁨과 슬픔이

너를 없앨 수도 없고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이 역시 세월과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은

초춘의 양광과 같이 내 가슴을 적시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살며시 찾아와

내 영혼을 난자하고 나의 살갗 위를 기어가는 구나

 

언제이던가

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너를 상상함은

나의 눈물은 유랑의 언덕에 서서

긴 하품을 하며 매일 너를 만나지만

우리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인고의 세월은 먼 허공에서 너울지고

숨어서 울고있는 바람소리는 우주를 덮는구나

 

어쩌려나

진한 그리움으로 상실되어 가는 그리움

끝 없는 여운으로 남아있는 너와 나의 운명

내가 너를 사랑함의 잔혹한 형벌

아마 잊을 수 없기에 너이기 전에

내가 먼저 너와 이별을 해야 할까

나의 눈물은 허공에서 방황을 하는데

(이유식 2021년 4월)

Susan Lee- 2.jpg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