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인간의 가장 솔직한 신체 부분

-떠날때 박수받는 뒷모습 보이도록

*쓸쓸히 혼자서 밤길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 소리, 찌르레기 울음소리에게도 뒷모습은 있을까?…’ (나태주 시인 ‘뒷모습’)

0…인파로 혼잡한 도심 거리에서 문득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집에서 늘 얼굴을 대하며 사는 아버지이건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아버지의 뒷모습은 왜 그리도 낯설고 쓸쓸하기만 한지.

갑자기 코끝이 찡해 온다.

0…“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말이다.

0…아무리 꼭꼭 숨기고 덮으려 해도 결코 감춰지지 않는 신체 부분. 바로 '뒷모습'이다.

얼굴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모자를 쓰고 화려한 치장을 해도 일단 돌아서고 나면 모두가 평등해진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존재의 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가끔은 너무 솔직해서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0…지금 나의 곁을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낯모를 타인들의 모습.

그들은 대체로 당당하고 분주하고 힘이 넘쳐 보인다.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 뒷모습은 왠지 쓸쓸하고 초라하고 슬프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도 뒷모습은 그리 당당하지 않다.

한 인간의 허약함이 어깨 위에 버겁게 드러난다. 그래서 정직하다.

0…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나 군에 갔을 때나 종종 고향집에 들르면 홀로 계신 어머님은 나를 위해 온갖 먹을 것을 챙겨주시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을 나설 때 어머님은 버선발로 나오셔서 버스에 오르는 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 어머님은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오셔서 멀어져가는 나를 향해 언제까지고 쓸쓸히 손을 흔드셨다.

차창 밖으로 흐려져가던 어머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물 속에 선하다.

0…어머님은 그때 내 앞에서는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으나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시면서 속으로 얼마나 가슴이 메이셨을까.

어머님은 아마 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혼자서 오래토록 바라보고 계시다가 돌아서서 이내 눈물을 훔치셨을 것이다.

내가 아무 미련 없이 훌쩍 이민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떠나는 나의 뒷모습에 눈물 흘릴 어머님이 안 계시다는 ‘홀가분'함도 한몫 작용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주변에 어머님을 홀로 남겨놓고 이민 온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한 강심장을 가지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0…다른 한편, 24년 전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죽마고우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던 옛친구의 속가슴은 또 어떠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어서 먼저 가라며 손을 흔들던 기억이 아련하다.

친구는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넋나간 듯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0…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늙으신 어머님의 가녀린 뒷모습에선 아무도 모르게 사위어간 세월의 서글픈 간극(間隙)을, 아버님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선 가장(家長)의 책무에 짓눌려 사느라 잃어버린 청춘의 허무함이 묻어난다.

천하를 호령하던 장군도, 권력을 주무르던 사람도, 강단에서 열기를 내뿜던 노(老)학자도, 덧없는 세월이 흘러 무대에서 내려와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쓸쓸하고 왜소하게만 보인다.    

 0…누구에게나 뒷모습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감추거나 꾸밀 수 없는 참다운 모습이다.

그의 모든 삶이 뒷모습에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0…누가 떠난 뒤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법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초라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을 했던 나는 정권교체기 때마다 전직 대통령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한다는 취지의 글을 써왔다.

 

최고 권력을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여전히 아름답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기대는 매번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전직 대통령들 거의 대부분이 초라하고 누추한 뒷모습을 보인채 떠나갔다.    

그런 씁쓸한 모습이 머지 않아 또다시 재현될 것 같다.

0..한창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 자신의 뒷모습도 살펴볼 일이다.

앞보다는 뒤에서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0…‘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 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이동원 ‘이별 노래’)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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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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