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신 분들
-그 은혜 평생토록 어찌 보답하리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내가 모셔온 선생님 (스승)은 몇 분이나 될까.
초등학교 6년, 중.고교 6년이면 최소한 열 두 분은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학 4년 동안 가르쳐주신 교수님이 대략 20명 쯤으로 추산하면, 모두 서른 분은 되지 않을까.
그 중 기억에 남아 계신 진정한 ‘스승님’은 얼마나 될까.
0…초등학교 시절은 여선생님 얘기가 빠질 수 없다.
갓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난 선생님의 이름은 지금도 생생하다. ‘박구서’. 여성 이름 치고는 좀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30대 중반쯤 되셨을 선생님은 얼굴이 다소 얽으셨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입학 전 해에 아버지를 잃은 나를 무척 귀여워 하시며 반장을 시켰다.
철없는 막내아들이 입학하자마자 반장이 돼서 급우들 청소하는 것을 감독(?)하는 모습을 보신 어머님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셨고, 그때 선생님은 어머니의 어깨를 다독거리셨다.
선생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0…초등학교 6학년. 당시는 시험을 쳐 중학교에 들어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어린나이에 죽도록 공부를 해야 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박옥걸’. 인상이 험상궂고 무서우신 선생님을 우리는 ‘옷걸이’라 불렀다.
선생님은 우리가 시험을 잘 못 치르면 사정없이 책상 다리로 ‘빠따’를 치는데 정말 공포의 시간이었다.
한번은 반 성적이 형편없이 나오자 선생님은 몹시 화가 나셔서 60명의 급우들을 미친듯이 후려치고선 몽둥이를 교단 쪽으로 홱 집어던졌다.
그러고선 돌아서서 눈시울을 훔치며 말씀하셨다.
“이놈들아, 내가 너희들이 미워서 이러는 줄 아냐. 너희들 공부 못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 줄 알아…?”
0…그 후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노오두’ 영어선생님과, 고3 때 진학지도를 해주신 ‘안태영’ 담임선생님 등이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안 선생님은 나의 문학적 취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셨다.
대학 때는 영시를 강의하시던 김치규 교수님이 떠오른다. ‘김종길’이라는 필명으로 ‘하회에서’ 등의 뛰어난 국문시도 많이 쓰신 교수님의 시를 나는 지금도 가끔 인용한다.
이들 스승님은 지금 어떻게 되셨을까. 아마 생존해 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을 것이다.
학교 졸업 후 종종 찾아 뵙겠다고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그런 기억은 별로 없다.
0…엊그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이 날의 유래는 1958년 5월 충남 논산의 강경여고(현 강경고)에서 시작됐다.
당시 강경여고 RCY(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은 현직 선생님과 병중에 계시거나 퇴직하신 선생님들을 위문하는 봉사활동을 펴고 있었는데, 이런 활동이 그후 충남지역 전체로, 나아가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러다 1965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 정해졌는데, 이날은 마침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이야말로 우리 겨레의 영원한 스승이라는 뜻에서 그리 정해진 것이다.
0…스승을 일컫는 말에는 유사한 단어도 많다. 선생, 교사, 교원, 은사, 사부…
가장 흔히 쓰이는 선생(先生)이라는 말은 본래 ‘먼저 태어나다’로 ‘후생(後生)’과 맞서는 말이다. ‘내가 너보다 선생했으니(먼저 태어났으니) 너보다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한자와 함께 한국에 들어오면서 옛부터 쓰던 ‘스승’이라는 말이 밀려나고 ‘선생’으로 불리게 됐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선생이란 말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흔히 ‘이 선생’, ‘김 선생’ 하는 식이다.
0…스승님이란 ‘높이 솟은 님'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나를 가르치고 일깨워주신 분을 높이 부르는 말이다.
스승은 단지 지식을 불어넣어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에서 올바른 길을 걷도록 일깨워주는 분이다.
그래서 선생은 많지만 진정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0…스승은 단순한 선생님과 다르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선생은 teacher, 스승은 mentor라 할까.
인도에서는 스승을 '구루(Guru)', 제자를 '시크(Sikh)'라 한다. 자식이 구루가 되면 아버지도 무릎을 꿇고 자식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자식의 제자'로서 존경을 표한다.
이북 함경도지역 방언으로는 무당을 스승이라고도 한다. 삶과 죽음의 요체를 알려주는 '영혼의 스승'이라는 의미가 짙다.
0…이처럼 스승은 제자의 정신적 성장을 돌봐주는 존재다. 그러기에 영적(靈的) 교감이 없으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의미가 없다.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사제지간의 상호존경과 인간적 신뢰다.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弟子去七尺師影不可踏)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따른다는 뜻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도 있다. 우리 가슴 속에 내재되어 흐르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다.
스승의 가르침과 걷는 길을 배우고 익혀 그 모든 것을 나의 생활좌표로 삼겠다는 의미다.
0…나아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도 있다. ‘쪽’(짙푸른 색깔을 띠는 하루살이 풀)에서 뽑아낸 물감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이르는 말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더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스승에 대한 보답인 것이다.
0…스승의 날을 보내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신 여러 스승님들 모습이 그립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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