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161)

*<T. S Eliot의 잔인한 4월은 겨울공원의 벤치에서>

민초 이 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캘거리의 피셔 크릭 파크

무희는 죽기를 원한다/ 하이얀 눈이 쌓였다고 /어느 누구도 앉아주지 않는 벤치이기에 / 때가 오면 무희는 웃으리라/

언젠가 쨍하고 햇빛은 뜨기에 /누군가 찾아와 나를 밟기도 하고/ 앉아 시시닥 비비닥하기도 한다/ 세월은 나를 알리라/

의자야 겨울 속의 벤치야 /어느 누구도 앉아 주지 않는다고 서러워 말라 /봄 여름 가을이 오면 /너는 언제나 수 많은 사람들을/ 내 살같이 포근히 감싸주지 않았더냐/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몇 사람이 /노약자 가난한자 권력 없는자 돈 없는자를 위하여/

자기의 등을 내어주고 /자기의 심장에 앉아 편히 쉬어가라는 자 있더냐/죽어가는 무희의 마음이다/

이 겨울이 가면 갈 곳없는 노숙자들 /생존의 실의에 빠진 수 많은 사람들 /청춘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들

마음놓고 토해 내어도 /영원한 비밀 지켜주고 /그 고통 포용해 주었지 않았더냐/ 오 무희여 잔인한 4월은 그렇게 간다/

정의와 양심이 없는 정치꾼들아 /파렴치한 권력행사로 억울한 사람 감방에 보내지 말라 / 혹한의 폭풍우에서/4월에 꽃이 피는

겨울 공원의 벤치를 보아라/ 양심이 살아있는 날까지/ 자기의 몸이 낡아 썩어도/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더냐/

4월이 왔기에 잔인한 4월을 생각한다.

그 강가 그 겨울공원의 벤치에서 억울하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의 집에서 5, 6 KM 떨어진 곳에는 피셔 크릭(Fisher Creek Park)이란 공원이 있다. 4계절 변치 않고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황량한 들녘같지만 자작나무가 우거진 길 사이사이 길을 걸을 수있는 trail 이 있어 산책하기에 최고의 길이다.

파릇파릇 새싹이 솟아나고 연초록 나뭇잎이 손짓하는 봄에서부터 녹음이 우거진 길 사이 가을 단풍잎이 처량하게 손짓하고 노오랗게 물든 나뭇잎이 낙엽잎 되어 바람으로 휘날리고 겨울 눈보라가 나의 볼을 때릴 때도 어김없이 내가 찾아가는 곳은 이 공원이다.

언제나 홀로 찾아가는 곳 이곳은 나의 생존을 음미하는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위의 시는 나의 시 겨울 공원의 벤치에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을 접목시킨 칼럼이다.

무색 무미 무취의 사색에 점겨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문득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가 인생에게 물었던 세가지의 질문이란 말이 떠 오른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또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다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이다.

톨스토이의 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또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라는 말을 상기해 보며 눈송이 얼굴을 때리는 하늘을 쳐다 본다.

공원 옆 강물도 이제는 얼음이 녹은양 제법 물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물물물 서로 당기며 밀며 정처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한발짝 한발짝 공원 길을 걸어 본다. 정답게 소근되며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 노쇠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중년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 애완용 목에 줄을 매고 걸어가는 연로한 멋진 노 부부들, 이 아름다운 모든 풍경들이 내 눈을 피하며 나의 옆을 지나간다.

나의 옆을 지나는 분들은 나를 보고 혼자 걸어가는 홀아비라 처량하다 상상할까 하니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걸어가는 내 마음이 울컥 치민다.

T.S Eliot은 1888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서 출생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그리고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22년 비 낭만파적 시를 발표하다가 1922년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를 발표 세계적인 시인으로 주목을 받고 1927년 영국으로 귀화 했으며 1948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1965년 생을 마쳤다.

ELIOT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외쳤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 작품을 출산할 때는 세계 제 일차대전이 끝나고 황폐한 인간 존엄의 마음, 헤일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인 전쟁의 상처와 비참함을 노래한 것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존의 환희는 무희가 즐겁게 춤을 추는 것 같음으로 은유적 표현이다.

무희가 죽여달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존을 역겨워함에서 쓰여진 것이리라는 나대로의 이 난해시에 대한 해석이다.

나는 ELIOT 이 죽어가는 무녀에게 원하는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저 죽고싶다고 한 대답을 상기해 본다.

나의 시 겨울 공원의 벤치는 죽어가고 쓸모없는 겨울공원의 벤치라해도 언젠가 쓸모가 있는 벤치가 됨으로 우리네 인생사도 쓸모없는 듯한 인생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있는 인생사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각인하며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냄새 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근래 몇년간의 조국의 현실을 보며 정의와 진실 양심이 실종된 정치꾼들의 난동을 보며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아가 올바른 사관과 진실 속에 양심과 자유와 능력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기를 갈망해본다.

2025년 4월 12일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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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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