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 별세

*<Who is Brian Mulroney?>

캐나다 전역에서 추모물결이 일고 있는 브라이언 멀로니 전 연방총리…

*Brian Mulroney 제18대 캐나다 총리(1984∼1993)

-1939년 3월 20일 퀘벡주 베코모 출생

-라발대학교 졸(법학사), 변호사, 사업가  

-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입당

-1984∼1993년 제18대 연방총리

-재임시 NAFTA 체결, 조세제도 개편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의 보수노선 따라

-이때문에 '캐나다의 레이건'으로 별칭

-1993년 총선에서 하원 295석 중 단 2석을 차지하며 전멸…정계은퇴

-이후 변호사 활동…에어캐나다 뇌물 수수 스캔들도  

-지난해 초 전립선암 치료에 이어 심장 수술

-2월 29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향년 84세로 별세

-유족: 부인과 캐럴라인(온주 재정위원장) 등 4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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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로널드 레이건'으로 불리는 브라이언 멀로니 제18대 총리(1984∼1993)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딸 캐럴라인 멀로니는 29일 엑스(X·옛 트위터)에 "(멀로니 전 총리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멀로니 전 총리는 지난해 초 전립선암 치료에 이어 심장 수술을 받았다. 유족들은 이후 상태가 점차 호전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퀘벡주 북동부의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났다. 변호사와 사업가를 거쳐 1984년 중도 우파인 진보보수당을 이끌며 집권에 성공했다.

 대중 연설에 재능이 있던 그는 세금 제도를 개편하고 정부 자산을 매각하는 등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의 보수 노선을 따랐다.

특히 1988년 캐나다·미국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주도했다.

1991년에는 물품 및 서비스 세금(GST)을 도입하는 등 조세제도를 개편했다. 이는 정치적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잃었지만 정부 재정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염화불화탄소 사용 금지를 추진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에 강력히 반대하며 영연방국가의 남아공 제재 움직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1984년 에티오피아 기근 해결에도 앞장섰다.

캐나다 내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의 통합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 분리주의의 부활로 이어졌다.

경기 부진 속에 지지도 하락을 겪던 고인은 1993년 물러났다. 그해 선거에서 진보보수당은 하원 295석 중 단 2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패배였다.

정계를 떠난 멀로니 전 총리는 법조계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1988년 캐나다항공의 에어버스 여객기 구입과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추문에 휩싸였다.

 처음에 부인하던 그는 컨설팅 명목으로 22만5천 달러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경찰은 그가 무기판매업자와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의 별세 소식에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성명을 내고 "멀로니 전 총리는 캐나다를 사랑했다"며 "캐나다인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항상 이 나라를 집이라 부를만한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애도했다.

보수당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대표는 고인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칭하면서, 그의 경제적 유산이 캐나다에 '변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https://www.thestar.com/politics/federal/brian-mulroney-former-prime-minister-who-reshaped-canada-has-died/article_159806cc-d758-11ee-b97c-b7f59c6a9f0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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