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해병대전우회 눈부신 활동
캐나다에 울려 퍼진 '빠따가'
토론토 해병대전우회, 37년 간 군가 부르며 행진
"후배세대 참여없어 소멸위기"…내년엔 의장대 공연 추진
(토론토=조 욱 기자) “빠따도 아구창도 나홀로 싶어 삼키며~어 / 시궁창과 화장터를 누비고 다녀도~오 / 사랑에는 마음 약한 의리의 사나이~~ / 난폭한 해병대라 욕하지마라~”
태극기와 캐나다국기를 든 해병헌병을 따라 예비역 50여명이 행진에 나서자 길 가에서 선 캐네디언 관객들이 이목을 집중한다. 위장복을 입은 노장들이 절도있게 걸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해병대 군가를 외친다. 해병대원 배우자로 구성된 여성 해병대원들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뒤를 따른다.
지난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해외에서 수십 년간 한국 군대와 문화를 홍보한 재외동포 단체의 활동이 주목받는다.
1978년 결성, 올해로 44년 역사를 가진 토론토 해병대전우회는 캐나다 토론토의 명물 CNE(Canadian National Exhibition) 박람회 행사에서 지난 37년 동안 단 한번도 빠트리지 않고 행진 퍼레이드를 참가했다.
북미에서 손꼽히는 대형 박람회인 CNE는 에어쇼·매직쇼·음악공연·갈비페스티벌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 중 전세계 100여개 예비역 군인단체들이 줄지어 행진하는 ‘용사의 날 행군(Warriors’ Day Parade)’은 대표적인 공연 중 하나.
올해 ‘용사들의 행진’은 토론토 다운타운의 프린스 게이츠(Prince’s Gates)에서 지난 8월20일 오전 10시30분 부터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이날 총 30여명의 해병대원들이 행진을 함께했다. 코로나 사태이후 3년 만에 처음 열리는 행사였으나 바이러스 전파 우려때문에 군가는 허용되지 않았다. 일부 대원들은 뒤풀이 자리에서 해병노래를 합창, 아쉬움을 달랬다. 특히 이번 행사는 1921년 처음 행진이 진행된 후 100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의미가 더욱 깊었다. 팬데믹으로 2년을 쉬어 올해가 100번 째다.
1975년 캐나다로 이민한 교민 이희용(74) 전 회장은 1985년 부터 거의 매년 행진에 참가한 예비역 해병대원이다.
“1980년대 후반 태극기를 앞세우고 캐네디언 관중들 앞에서 ‘빠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엔 한국을 아는 캐네디언들이 거의 없어 대원들이 모두 한국을 알린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행사를 준비했다. 몇 주 전부터 미리 모여 5~6곡의 군가를 정하고 어떻게 행군을 전개할 지 고민을 거듭했다. 이런 노력들 덕분에 퍼레이드는 거의 우리의 독무대였을 만큼 관객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과 큰 호응을 받았다.”
대한민국 해병대가 퍼레이드에 참가한 뒤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1985년 부터 10년 간 퍼레이드에 참가한 아시아지역 예비역 단체는 한국 해병대 밖에 없었다. 해병대 행진에 자극을 받은 대만과 베트남 재향군인들이 1995년부터 행진에 참여했다. 재토론토 재향군인회도 몇 년간 행진을 함께 했는데 나중에 흐지부지되고 해병대만 남았다.”
1975년 토론토로 온 그는 외상으로 산 비행기표에 단돈 200불(약 20만원)만 쥐고 캐나다로 이민왔다.
“70년대 캐나다로 이민 온 한인들은 시쳇말로 거시기 두 쪽 말고는 가진 게 없었다"는 그는 "당시에 온 1세대 이민자들이야 말로 해병대 정신인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젊은 혈기로 모든 걸 이겨내며 힘들 기색도 없이 캐나다에 정착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씨는 요즘 격세지감을 많이 느낀다. 캐나다에도 한류가 불어닥쳐 일상생활에서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는 것.
"과거에 편의점을 할 때는 백인이며 흑인이며 무시당한 적이 적지 않은데 몇 년 전부터 한국(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K팝이나 한식, 드라마·영화를 얘기하며 반기는 캐네디언들이 부쩍 많아졌다. 60·70년대 이민 초기만해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의 위상이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Top 10에 든 것도 해외에 사는 동포가 볼때 정말 자랑스럽다. 나 스스로도 이번에 행진할 때는 그 어느때보다 대한민국 대표라는 자부심이 컸다"고 힘주어 말했다.
토론토 해병대전우회의 김승용 회장은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상황임에도 기꺼이 행진에 참가한 선·후배님들께 감사하다”며 “한가지 아쉬운 것은 30·40대 후배기수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 올해 행사에 참여한 대원들도 70~80대 선배기수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후배들의 참여가 없으면 40년 가까이 이어온 이 전통이 끊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최 동포간담회에 참석했을때 해병대 의장대의 캐나다 초청 공연을 건의하려고 했으나 시간 관계상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하지만 조만간 토론토총영사관과 본국의 해병대 사령부와 접촉하고 한인언론에 공론화시킬 예정이다. 내년에는 세계 최고수준인 해병대 의장대가 캐나다에서 멋진 퍼레이드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포사회의 많은 관심과 30~50대 예비역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