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그대에게”(2)
*<더불어 사는 세상>
“길을 묻는 그대에게 말합니다”(2)
-국가대표 수영선수…배우를 꿈꾸던 청년
-17살 때 블의의 사고로 인생 송두리째 뒤바뀌어
-“사고는 한순간…모든 사람이 예비 장애인”
-토론토 성인장애인공동체 백민준 씨의 인생 2막 스토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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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국의 장애인신문인 <Ablenews>에 게재된 기사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황서영의 컬러풀 캐나다(2)
백민준 인터뷰 두 번째 이야기
필요 없는 도움이 만연하는 사회
황서영: 혹시 캐나다와 한국의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하나만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백민준: TTC(Toronto Transit Commission : 토론토의 대중교통)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기도 대도시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많아요. 너무 많아서 지하철을 그냥 보낼 때도 많은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 지하철에서 내려요. 제가 먼저 타고 갈 수 있게 공간을 내어 주고 자기는 다음 열차를 기다리겠다는 거예요. 제가 아까 한국의 엘리베이터 일화를 말씀드렸는데 그것과 완전 정반대의 상황인 거죠.
황 : 정말 완전 반대네요. 생각해 보니 여기서는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그게 당연한 걸로 느끼고 있었어요.
-백 : 마트에 가도 직원분들이 항상 저를 신경 쓰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이 손에 닿지 않아 쳐다보고 있으면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달려와서는 ‘어떤 거 필요하니? 저거 꺼내줄까?’ 하면서 도와줘요. 캐나다에 와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자동문 버튼을 제가 누른 적이 거의 없어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얼른 가서 저를 위해 항상 눌러주거든요.
황 : 맞아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죠. 저도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창피하게도 버스가 왔다고 냉큼 올라탔다가 기사님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난 경험이 있어요. 몰랐는데 제 뒤에 휠체어 타신 분이 있었던 거예요. 누가 먼저 왔느냐에 상관없이 대중교통은 휠체어 이용자나, 유모차 대동자, 혹은 보행기를 이용하시는 어르신이 가장 먼저 타고 내릴 수 있게 양보하는 분위기니까요. 크게 혼난 이후로 항상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타는 습관이 제대로 생겼어요.
-백 : 그런데 더 좋다고 느끼는 부분은, 사람들이 도와줄 때의 마음 같은 거 랄까요. 내가 ‘희생을 해서 저 불쌍한 장애인을 도와줘야지’가 아니라 ‘저 사람 몸이 좀 불편해 보이는데 내가 버튼 하나 눌러주는 거 어렵지 않으니까 내가 하면 되지.’ 하는 마음인 게 느껴지거든요. 도움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굳이 티를 내지 않고 생활 속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나서 캐나다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황 :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먼저 양보하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당연한 분위기, 이곳의 그런 문화를 찬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비교가 돼서 참 씁쓸해요. 분위기를 조금 바꿔 다음 질문으로 가볼게요. 한국과 캐나다의 스포츠 교류를 꿈꾸신다고 말씀하신 걸 들었어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백 : 한국에서 선수들이 훈련을 위해 캐나다로 오기도 하고 반대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가는 경우도 많은데 그 좋은 기회들이 대부분 훈련으로만 끝나서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해요. 흔치 않은 기회에 문화적인 교류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문화 교류의 행사들도 많이 기획되면 좋을 것 같거든요. 보다 돈독한 소통과 교류를 할 수 있게 말이죠. 제가 선수 생활도 오래 했고 여러 가지 대외적인 활동들도 많이 한 편이라 인맥이 꽤 넓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아서 문화 교류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황 : 듣고 보니 정말 스포츠만으로 끝나지 말고 좀 더 깊은 문화 교류가 겸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벌써 마지막 질문입니다. 유튜버 '굴러라백곰'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데 세상에 던지고 싶은 백곰의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백 : 제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꼭 하는 말이 있어요. ‘모든 사람은 예비 장애인이다'. 사고라는 건 정말 한순간이거든요. 사람들이 그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산다면 사회적인 인식이 보다 빠르게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장애인들한테 다큐멘터리 섭외가 많이 들어와요. 그런 프로그램을 찍다가 보면 얼마 안 가서 진이 빠져요. 장애인을 불쌍한 대상으로 연출을 하려고 애쓰다 보니 그 시간 자체가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사회적 약자라는 프레임을 씌워야 더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해하지만 저는 다른 시도가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이 오히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동기부여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세상에 줄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황 : 이제는 다큐멘터리 말고 예능, 오락, 혹은 드라마 같은 곳에서도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백 :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장애인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당부예요. 몸과 마음을 움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기도 한국 식당에 가면 대부분 장애인 화장실을 창고로 쓰고 있어요. 아무도 이용을 안 하니까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거잖아요.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런 시설적인 부분과 더불어 인식적인 부분들도 개선이 빨리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불편한 게 많겠지만 그래도 몸을 자꾸 움직여서 활동하는 의지를 가져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건, 비장애인 분들이 도움을 주시려고 할 때 그걸 흔쾌히 받아들여 주면 어떨까 하는 거예요. 물론 저희는 생활이다 보니까 혼자 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솔직히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거든요.
가령 차에 타서 휠체어를 접어 올리는 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혼자 처리하는 게 훨씬 빠르죠. 그래도 저는 도움을 주시겠다는 분이 계시면 흔쾌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알려드리거든요. '이건 이렇게 접으면 되고 이렇게 올려 주시면 된다.' 인식 개선은 그런 사소한 소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들 쪽에서 ‘아뇨, 괜찮아요’하고 딱 잘라 거절해 버리면 도움 주시려는 분 입장에서는 ‘아, 저분들은 내 도움이 필요 없구나' 그렇게 생각해 버리거든요.
황 : 그렇겠네요. 저 같아도 다음에 또 그런 상황이 오면 선뜻 손을 내밀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요. 내가 괜히 오지랖을 부렸나 싶어서 좀 무안하기도 할 것 같고요. 오늘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민준 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이 사람은 표정에 어두운 구석도 구김도 하나 없구나, 나보다 훨씬 쾌활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나서 바로 반성을 했어요.
이 사람이 왜 어둠이나 구김이 있어야 하는데? 몸이 불편하니까? 선입견을 가지고 멋대로 속단해 버린 거죠. 오히려 구김이 있는 건 내 마음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담이지만 유튜브에 캠핑이나 낚시를 하신 영상이 많다 보니 야외에서 맛있는 걸 직접 요리해 드시는 모습들이 많더라고요. 어젯밤에 사전 조사 겸 유튜브 보다가 결국 저도 새벽 1시에 라면을 끓이고 말았답니다. 너무 맛있게 드셔서. 하하. 무튼 오늘 귀중한 말씀들 정말 고맙습니다.
-백 : 별말씀을요. 장애인들에게 관심 가져 주시고 이렇게 알려주시는데 힘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식적인 질문이 끝나고 낚시에 대해 물었더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덩달아 신이 난 나도 그의 유튜브 영상을 탐독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쏟아냈다.
"제가 활어회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캐나다에 와서 회를 실컷 먹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바다회가 귀하니까요. 송어 낚시를 하고 바로 회 쳐 드시는 영상을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연어와 비슷한 색이던데 맛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 송어요! 연어의 식감은 기름지고 크림처럼 부드럽잖아요. 근데 송어는 육질이 아삭아삭해요."
"광어회처럼요?"
"광어보다 더 단단해요. 엄청 활동적인 녀석이다 보니......"
"그럼 우럭?!"
"네! 우럭이요! 특히 잡은 후 그 자리에서 바로 회로 드시면 더욱 탱글탱글하고 정말 맛있어요. 꼭 한 번 드셔보세요. 개인적으로 초장보다 막장에 찍어 드시는 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기기 위해 녹화한 영상을 돌려보다가 혼자 웃었다. '탱글탱글'과 '막장' 부분에서 생선을 삼키는 펠리컨처럼 침을 한껏 삼키는 내 목이 크게 두 번 일렁이는 모습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캐나다에 온 지 7년이 넘었는데 낚시는커녕 캠핑도 아직 해본 적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듯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충분히 어이가 없는 부분이라 그의 놀란 눈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러 먼 곳에서도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오는 마당에, 나는 여태 뭐 하고 살았을까. 올 해에는 유튜브 '굴러라백곰' 채널의 영상을 참고서 삼아 캐나다의 자연 속에서 나도 한 번 굴러보리라, 다짐하며 포스트잇에 적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였다.
'송어회에는 초장(醋醬)보다 막장'
어찌 송어회 뿐이랴, '인생의 한 방'은 역시 초장(初場) 보다 막 장에 있다.
그의 앞날에 더 이상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이나 자갈밭이 없기를 바란다. 물론, 그가 가는 길에 자갈이 아니라 바윗 덩어리가 놓여 있대도 그의 휠체어가 돌아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장까지 그는 힘차게 구르며 끝없이 도전할 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