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이유식 시인

인생길 산책 99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원수관계의 원인

세계 어디에서나 민족주의를 가장한 이념의 골이 문제로 등장함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글을 쓴다고 오랜 기간 나의 취미생활이랄까 정력을 쏟고 있음을 생각하며 문단도 작은 단체인 것 같지만 그 이념의 골이 있음을 생각하며 우리 조국의 문단의 실태를 나름대로 분석해 본다.

이방인의 생활이 깊어가고 동포사회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수많은 단체장을 맡아보았기에 60이 넘으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정진을 하면서 한 생을 마감하리라는 나의 상념이 시인이 되고자 시를 써 온지도 20여년이 넘었다.

나는 명시인이란 칭호를 듣지 않아도 좋았고 시를 써서 돈을 벌어본다는 생각도 없고 어떤 상을 받는 것에 연연하지도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으로 여기까지 왔다.

시(詩)라는 것을 쓰다 보니 한국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라는 단체와 한국문인협회라는 두 문단 단체가 있음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민작의 신경림 이사장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민작 회원이 되어 가끔 글도 발표하기도 했다.

얼마 후에 알았지만 민작은 참여문학을 하는 단체인 것을 알았고 한국문협은 순수문학을 하는 단체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순수문학에 전념하는 분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어 민작을 탈퇴하고 한국문협 회원으로 장기간 머물고 있다.

서설이 길어졌기에 이것으로 맺음하면서 위에서 한 설명은 어디서나 그 이념이 문제라는 것을 각인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이 일치할 수 없음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에 국가간의 분쟁, 민족간의 갈등이 파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도 민족간의 이해 득실의 역사가 오늘의 참혹한 전쟁으로 발전되어 현재 90일 이상 지속되고 있음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변은 가끔 동포들이 나에게 물어온다. 이 양국의 전쟁원인이 무엇이냐고. 장황하게 설명할만한 상식도 없기에 나름대로 인터넷이나 남이 쓴 글도 짜집기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이 양국이 왜 원수지간이 되었을까? 또한 같은 슬라브족인데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상기해보면, 조국도 신라, 백제, 고구려가 있었듯이 이 민족의 원조의 핏줄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라는 3개국은 키에프 공국이라는 뿌리에서 갈라진 민족이다.

키에프 공국의 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이다. 같은 뿌리여서 언어도 유사하여 쉽게 말을 공유할 수 있다. 적대관계의 원인이 된 것이 무엇일까를 상고를 하면 스탈린 집권시 홀로도모르(Holodomor)라는 대 기근이 중요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 중의 하나이다 이곳의 땅은 흑토이기에 무엇을 심어도 잘 자라는 풍요의 땅이다.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후 공산혁명의 일환으로 부농들을 전부 처형했다. 이 부농을 ‘쿨라크’라 칭하며 처형을 함과 동시에 그의 가족들의 살갗을 벗겨서 비누로 만들어서 사용을 했다.

쿨라크가 가진 농지를 몰수함과 동시에 집단농장 체제로 전환함과 동시에 생산량을 할당하여 강제 징수를 해갔다. 생산은 저조했으나 소련은 이에 상관치 않고 과도한 세금과 농산물을 징수해갔다.

1933년 하루에 2만8천 명이 굶어 죽었으나 소련은 이에 상관치 않고 농작물을 수탈해 갔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쥐, 개, 고양이, 곤충 등을 잡아 먹고 연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잡아서 먹었고 자식을 서로 바꾸어 잡아 먹었기에 인육 상점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소련은 천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의 여분이 있음에도 우크라나인을 굶겨 죽였다는 사실이다. 당시에 5백만에서 1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굶어 죽었는데 이 대기근을 홀로도모르라 명명하며 매년 기념일을 정하고 기념일에는 곡식 씨알을 뿌리며 원혼을 달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처참한 과거를 가진 우크라이나 민족은 독일이 쳐들어왔을 때는 해방군이라며 환영을 했다 한다. 독일군이 홀로코스트를 집행할 때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에 동조했다 하여 현 푸틴은 우크라나이를 친 나치 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된 원인은 우크라이나가 자위책으로 나토에 가입코자 함에 러시아가 이에 대한 불안감 등등이라 하지만 더 깊은 내용은 지면상 생략을 하고자 한다.

결론으로 이 역사적인 원한을 가진 우크라이나는 자기의 조상을 학살한 소련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으며 조국을 지키려는 의지가 투철하여 하루에 70만 명의 자원 입대자가 있음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과연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아득하기만 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푸틴에게 점령되어 죽지 않는다 해도 구 소련에 당한 원한을 잊을 길이 없기에 이래도 저래도 죽기는 마찬가지 현실이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의 주요 원인을 제공한 것은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는 파라다이스를 약속하지만 실제는 원한과 분노 그리고 국민들간의 이간질 등 질투심을 부추겨 지옥을 만들었고 소수 공산당 당원들의 악행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생각이다.
 즉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됨을 자유시민은 항시 생각해야 되리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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