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문단

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88)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장기려 기념사업회 손봉호 이사장(가운데)과 이창엽 후원회장, 필자(오른쪽)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그는 누구인가? 그저 상식적으로 훌륭한 인술로 국내외의 불우한 환자들을 위하여 한 평생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로 생을 마친 의사였다는 것이 나의 일상적인 상식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생겼다.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불루크로스 의료봉사단에서 장기려 박사를 그리는 자선행사의 밤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지난 2021년 9월 30일 이 자선의 밤 행사는 서울 일원동 삼성병원 맞은편에 있는 한 자선단체 건물에서 장 박사를 그리는 불우 청소년들이 우리의 가곡과 고전무용을 선보이는, 모금을 겸하여 그들의 연예실력을 과시하는 아주 뜻있는 행사였다.

불우 청소년들의 심신을 단련하여 장애를 이겨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의욕과 용기를 주고 장 박사의 뜻을 기리는 이 청소년들의 열연은 관람객의 심금을 울렸다.

장 박사는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 부분 절제수술을 실시, 1959년에 간암환자의 대량간 절제술을 성공함으로써 한국 간 외과학의 실질적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1961년 대통령상을 받으며 그 수술법은 외과의사에게 교과서로 통하게 되었고 해마다 이 날은 간의 날로 제정되어 의학계의 역사적인 날로 기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기술인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31인 중 한 분으로 헌정되었다.

이렇듯 최고의 명의였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집 한 칸 마련하지 않고 병원 옥탑방에서 평생을 살며 인술을 실천한 청빈한 의사였으며, 자신의 월급을 가난한 환자에게 모두 내어주고 입원비가 없어 퇴원을 못하는 환자들을 도왔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였다.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릴만한 지위에서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치고, 의사를 한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던 이 시대의 참 의사였다.

평안도 출생인 장 박사는 1950년 겨울 천막병원을 시작으로 부산 영도에 복음병원(현 고신대 복음병원)을 세워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그 후 1968년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을 설립,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20년 동안 20만명의 영세민에게 의료수혜를 받게 하였다.

1976년 은퇴 후 부산 동구에 청십자병원을 설립, 85세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료진료와 사회봉사활동을 계속했다.

국민훈장 동백장(1976), 적십자 인도장 금상(1978), 막사이 사회봉사상(1976) 등 각종 상들을 수상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훈장을 1996년 추서하였다.

사후 장 박사의 업적을 승계 그의 맏아들 장려구 박사는 성산 장기려상, 청년 장기려 의학상, 장기려봉사 청년대회상을 해마다 시행되고 있음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장기려 박사 자선행사의 밤에 초대되어 자리를 같이한 것은 나의 생애에 잊지 못할 민족애와 조국애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으며, 팔순을 넘긴 나 같은 사람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던가를 각인하니 하늘을 쳐다 볼 수 없고 땅을 밟을 수 없는 무능에 한탄만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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