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108)
10월이여! (1)
-민초 이유식(시인)
1974년 7월 28일 캐나다 땅을 밟은 날로부터 3개월을 맞이했다. 그 해 10월은 가을이지만 날씨가 매섭게 추웠다. 하기 작품은 내가 시(詩)라는 것을 처음 써본 작품이기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3식구가 미화 600불을 들고 떠나온 조국, 남의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막연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첫 달에는 염치없이 동서 집에서 먹고 자고 공짜로 살고, 178불의 셋돈을 지불하고 2 플렉스로 이사를 나왔다. 이제 가진 것은 2달 가까이 살고 남은 돈 78불뿐이다. 그 해 10월 처음 써본 시라는 것을 주절주절 여기에 나열해 본다.
왔던 길이 어디인가/ 거기가 텅빈 북미대륙/ 10월의 첫 눈보라 맞고 서서/ 길가에 깔린 낙엽은/ 오곡 무르익은/황금 벌판으로/ 나는 왜 꿈을 더듬나/ 멀고 먼 야심이/ 로키산맥의 눈 사태로/ 녹아 내리는/ 추억의 오솔길/핏빛서는 칼끝 앞에/ 백팔번뇌 위에 누워/ 꽃잎은 떨어졌고/ 잎은 물들어 갔었다/ 포효하는 갈대들의 물결/방황하는 저 무리들/ 떨어지는 잎을 어찌 막을까/인생의 모퉁이에서/ 계절의 진미를 삼키며/ 살아간다는 일/ 외지고 서러운 길 돌고 돌아/ 바람같이 불어간 그날/오! 빛을 잃은 대지여/ 파도치는/ 10월의 눈물이여/
<詩作의 産室>
바람이 차다. 10월 중순인데 눈이 많이 내렸다. 아내는 가진 것 78불 밖에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며 한숨이다. 다음달 지불할 월셋돈도 없다. 이 막연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절박한 심정을 누구에게 호소를 한단 말인가?
누가 나의 암담한 현실을 이해하고 나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하니 심장이 멈추어진다. 임신 6개월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늘도 아내는 여기 저기 일자리를 찾으려 애쓴다. 아내가 집을 비우면 멍하니 밖만 쳐다보다가 숨이 막혀오는 현실에 눈물이 핑 돈다.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어 보았다. 나의 아집과 허망한 야심이 고생을 시키지 않아도 될 아내를 고생시키며 세상 모르는 한 살 된 딸은 무엇인가 부족함에서 엄마도 찾고 칭얼거리며 운다 울어. 나도 딸을 부둥켜 안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다가 이불을 덮어쓰고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본다. 울음이 밥을 먹여주지 않고 앞날을 해결해 주지 않음을 알면서도 밤이 되면 아내 모르게 이불을 덮어쓰고 울어본다.
그 시절 좋은 직장 팽개치고 3년만 공부 더하고 조국으로 돌아와 훌륭한 일하면서 살자고 다짐을 했던 나, 세상을 너무 몰랐고 환상에 젖었던 자신의 바보스러운 사고가 비참한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
3, 4일을 방 속에서 이불만 벗하며 헐떡이는 숨통을 어찌할 수 없음에 몸부림을 쳐 본다. 하루 종일 몇 군데를 다니며 일자리를 찾아보던 아내는 허기진 몸을 이끌고 집을 찾아온다. 멍하니 쳐다보니 아무 말이 없다. 어느 일자리도 나타나지 않는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며 둥그런 눈망울을 굴리며 눈물을 흘린다.
이 기막힌 현실 어찌하면 좋을까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야 방 속의 폐인으로 생을 끝낸다 해도 처자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또한 뱃속에서 꼼틀거리는 나의 자식, 내가 아버지 못보고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는데 내가 세상을 떠나면 뱃속의 아기는 나와 같은 또 아버지 못 본 유복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나의 생명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에 타 들어가는 마음은 절망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하루 이틀 방향감각 없이 길 없는 길에서 멍하니 파아란 하늘만 쳐다보다가 나의 뇌리를 두드리는 것, 내일부터 행상이라도 하자는 마음에서 각오를 다진다. 가진 것은 6촌 동생이 이민 선물이라며 유화 12점과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가져온 백삼 5박스가 있다. 용기를 잃지 말자는 각오를 다지며 유화 12점의 오일 페인팅 캔버스의 그림을 둘둘 말아서 겨드랑 밑에 끼고 무작정 시내 중심가를 찾아 길을 떠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