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시인의 인생길 산책 104

-급변하는 과학문명 속에 시인은 고독하다

내가 시인인가? 나의 삶의 가치 기준인 인류에게 영원히 읽혀지는 멋진 시 한편 남기려는 꿈이 사라져 갔다. 그 이상이 산산이 부서진 허공의 메아리로 고뇌하는 나를 보고 허허로이 푸념을 한다. 바람이 불어주고 불어가고 있건만 보이지 않는 바람소리 그 바람소리 따라 고독한 삶은 헐떡인다. 헐떡이는 숨소리는 응어리진 절망감으로 고독을 삼키는 오늘 하루도 태양은 서산마루에 걸려 있다.

문득 급변하는 과학문명의 발전이 잉태하는 대중문화 시대에서의 시인의 존재, 이런 사회의 현상 앞에 시인이라는 존재 가치가 한참 퇴색한 공간 속에 설 자리를 잃었다. 누가 시를 알려 하는가. 한가하게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문명 속에서 갈 길이 없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은 옛적의 낭만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래도 변천하는 과학문명 그 안에 안주하는 대중문화 속에서 방황하는 시인들이 있다. 이 시인의 삶이란 사회 흐름의 물결, 그 물결을 역류하면서 자가도취의 생활, 자학과 고독의 눈물이다. 시인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아득하기만 한데 현실을 외면치 않으려고 노력하는 시인들이 너무 가련하다.

과학문명이나 사회의 변천이 급류로 가속되면 순수 예술인, 시인이나 순수 문학에 목줄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가난하고 외로울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대중문화의 쓰나미 속에 휩쓸려가고 있다. 아니 수퍼 소닉의 보이지 않는 빛 속에 잠식되어 가고 있음을 본다.

빠른 변화를 이겨나갈 길이 없기에 시인은 배가 고프다. 대중이 시를 읽지 않으니 시집이 팔릴 수 없고 책을 팔 길이 없으니 절필하는 시인이 늘어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시가 없고 순수문학적 삶이 없는 사회현상은 인간사회를 윤택하고 성숙된 사회로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오늘을 즐기려는 황금만능의 세태는 인문학의 갈 길을 잃게 한다. 인문학 자체가 대중 관심에서 소외되고 있으니 순수문학이니 시를 논함은 바보일 수 밖에 없다.

무식한 것처럼 암흑은 없다고 말한 <쉐익스피어>의 한마디! 이 한마디가 인류를 무지한 삶의 길, 즉 물질문명과 편한 삶 즐거운 하루 하루에 잠식되어 가고 있음을 보는 시인들은 이 현상을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의 자학적 삶과 고독한 한탄의 삶도 한번쯤 생각하면서 물질문명 속의 인간 본능의 사람 냄새와 살아가는 값어치를 찾는 가치 있는 생존을 음미하며 병행할 수 있는 생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중문화 속에 안주하는 사회에서 문학은 멸망의 길을 걷고 시인은 외롭고 쓸쓸히 현실에서 지옥과 같은 생존을 영위하고 있으리라. 누가 있어 육당 최남선의 현대시를 음미하고 소월 김정식의 서정을 노래하랴. 이 지옥과 같은 삶에서 시인들은 매몰되어 가는 삶의 뒤안길에서 울고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쓰나미를 누가 탓을 하고 원망하랴, 삶의 가치관의 변덕스러운 전환에 휩쓸리지 않으니 배가 고파오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는 슬픔은 분노한다. 그러나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다.

현재의 시인들은 배가 고프고 분노하면서도 호소할 곳도 없는 방황 속에서 고독하다. 윤동주의 시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 마음을 담그고 고독하면서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생존을 영위코자 함을 어찌하려나. 하늘이여! 땅이여! 창공을 날아가는 새들이여! (2022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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