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 102
멋지게 살아가는 노인과 볼품 없는 노인
-민초 이유식 시인
UN, WHO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다 하나 사람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사람들의 연령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음은 한번쯤 음미를 함도 뜻이 있다는 생각이다.
즉 새로운 연령을 구분함에 따르면 0-17세는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세가 넘으면 노인이고, 100세를 넘으면 장수 노인으로 칭함이 통설이라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인간의 수명이 과학문명과 의학의 발달로 장수를 하고 있음을 자화자찬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대로의 졸견은 사람은 각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연령을 가늠함이 옳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는 자가 자기 의지대로 생존을 영위할 수 없다면 이는 생물체가 아닌 무생물체가 아닐까. 병상에서 남의 신세를 지며 살아 있음이라던가, 가족들에게 불편한 존재로 살아 있음은 살아있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위의 분류에 따라 8순이 넘은 노인층이기에 나 자신의 삶을 가끔 반추를 하면 그저 서글픔만이 쌓여간다. 나아가 내 자신이 어제에 읽은 글도 남에게 들은 귀한 말도 잊어버리고 오늘 내가 어제의 일을 상기하지 못함에서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행여 치매가 온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망각 속에 행여 실수는 없었는가를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예컨대 어디에선가 읽고 들은 이야기를 마치 나의 지식이고 양식인양 주절대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음은 나를 당혹하게 만든다. 어디에선가 읽은 글을 마치 내 것인 양 나를 나타내려고 함에 따라 남에게 꼴불견과 같은 존재로 인식될까 하는 노파심에 쌓일 때도 있다.
인생사는 한치 앞을 못 보는데 백 번을 잘 하다가 한번의 실수도 포용하지 않는 냉혹한 사회가 아닌가, 아차 실수 아닌 착각이 한 인생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예가 흔하기 때문이다.
가끔 나 자신이 노인이라 해도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음미하면 나이가 8순이던 9순이던 나이와 상관 없이 이상을 가지고 자기의 의지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청춘으로 정의를 함을 상기한다.
즉 나의 사고는 청춘인데 청춘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하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에 빠질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애란>의 노래처럼 사람들이여 나 보다 나이 젊은 사람들이여 너 노인이 되어 봤나? 나 젊어 봤다. 이 얼마나 멋진 노래 가사냐! 예부터 인간사 새옹지마라 하니 그저 이해하고 포용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오늘 친구가 보내온 글 중 한평생 심리학 교수를 하다가 <멋진 노인과 추한 노인>이란 주제로 지난 3년간 2015명에게 강의를 하면서 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내용을 보내면서 나에게 물었다. 친구는 멋진 노인이냐 아니면 추한 노인이냐 둘 중 하나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리라는 제의를 해왔다
우선 멋진 노인은 1)나누고 베푸는 노인이고, 2)친절하고 배려하는 노인이고, 3)건강하고 깔끔한 노인이다.
다음 추한 노인은 1)냄새가 나는 노인이고, 2)어디서나 잘난척하는 노인이고, 3)자기 자랑을 끝없이 하는 노인이라는 내용이 설문조사에서 노인들이 대답한 것이다.
참 뜻있는 설문조사의 내용이다. 멋진 노인과 추한 노인 중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남들은 나라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까 의문 부호가 꼬리를 물고 있다. 근래에 가입을 한 우리 동네의 노인 회원은 200여명이 넘는다.
현 노인회 정관이 65세 이상이면 회비를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하니 UN에서 분류한 노인 연령으로 정리한다면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얼마나 될까. 그 80세의 연령이 넘은 분들 한 분 한 분은 멋진 노인일까 추한 노인일까를 상상하면 참 재미가 있다.
내 생각에는 우리 동네 노인 분들은 모든 분들이 멋진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며 보람차고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2022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