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멍에
-세상사는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
-상처받지 않으려면 제로(0)에서 시작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사냥이 끝나니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는 뜻이다.
내가 필요할 때는 이용하다가 필요 없을 때는 가차없이 차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고사성어다.
감탄고토(甘呑苦吐)란 말도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니, 역시 내가 필요할 때는 다가오다가 싫증이 나면 언제 보았냐는 듯 외면하는 행태를 이른다.
0…인간관계란 것이 무릇 이러하다.
‘배 고프면 달라붙고, 배 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버리나니 이것이 바로 인정의 널리 퍼진 폐단이다’ (채근담).
나는 인성이 순진한 탓인지, 아니면 좀 모자란건지, 사람을 만나 인상이 좋다고 생각되면 쉽게 믿고 푹 빠져 정(情)을 주는 타입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상대방이 등을 돌리면 가슴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0…누굴 만나서 좋게 비쳤던 인상이 오래토록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기 마련이고 그러기에 상처받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사람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오래 사귀어 보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0…공자는 일찌기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설파하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점과 약점이 혼재돼 있으니 이를 잘 가려서 교류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 이리저리 마음속을 재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0…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는 세상사 인간관계.
사람과 사람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우리처럼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원만한 인간관계는 더욱 소중하다.
가뜩이나 외롭고 고립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마음 터놓고 대화할 상대마저 없다면 정신건강에도 좋을 리 없다.
0…문제는, 대화상대도 상대 나름이라는 것.
외로운 타국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길지 않은 이민 삶 속에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친해졌다가 이내 소원(疏遠)해지는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
0…좁은 이민사회에서는 서로간의 이해관계로 얽힌 경우가 많아 상처가 더 깊다.
내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못본 척 외면하며 떠나버리는 그 마음속엔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까.
아마 내가 더 이상 필요없어졌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른다.
0…이래서 갈수록 사람을 사귀는 것이 조심스럽고 두렵다.
그래서 다짐을 하게 됐다.
확 달아오르다 곧 식어버리는 인간관계는 그만 접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오래가는 우정을 지속하자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먼저 나를 버리고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등을 돌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0…부동산 일을 하는 아내에게도 습관처럼 해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너무 빠지지 말고 쿨(cool)하게 대하며, 가능한 제로(0)부터 시작하라고.
그래야 실망하는 일이 적다.
좋게만 보였던 사람이 그 이미지를 오래토록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처음엔 인상이 좀 그랬지만 사귀어보니 정감이 가는 사람이 더 많다.
0…인간관계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인연이 악연으로 끝난다면 애당초 만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필요할 때만 다가오는 사람, 필요가 없어지면 돌아서는 사람, 내가 어려울 때 외면할 사람…
0…요즘 새삼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마음에 꺼리는 사람과 함께 있기보다는 외롭더라도 홀로 있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가를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독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다.”
(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