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모(國母)의 품격
-대통령을 지배하는 여인
-그만한 자질과 기품을 갖춰야
▲한국의 역대 영부인들(상단 왼쪽부터), 프란체스카 도너, 공덕귀, 육영수, 홍기, 이순자, 김옥숙, 손명순, 이희호, 권양숙, 김윤옥, 김정숙
대통령의 아내를 흔히 영부인(令夫人)이라 부른다.
원래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의 아내를 이르는 말인데, 지금은 흔히 대통령의 부인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영어로는 First Lady를 쓴다.
0…영부인은 남편이 이끄는 정부의 성공 여부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가장 가까이서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부인을 한층 더 높이면 국모(國母)가 된다.
문자 그대로 한 국가의 어머니란 뜻이다.
그만큼 세인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다.
0…그런데 이 말은 너무 권위적이어서 요즘엔 잘 안쓴다.
구한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의 칼을 맞고 죽기 직전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쳤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12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그 중 독신인 박근혜를 제외하면 모두 11명의 영부인이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남편을 보좌해 어떻게든 나라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0…역대 11명의 영부인 가운데 눈에 띄는 몇 사람이 있다.
우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
당시만 해도 외국출신(오스트리아)의 부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음에도 그녀는 유려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6·25 전후 세계 각지에 구호를 요청하는 등 남편의 손발이 되어 민간외교관 역할을 수행했다.
이승만은 그를 가리켜 “아내의 지혜와 용기, 인내와 슬픔, 노력이 나로 하여금 오늘을 맞게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0…이어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 한국 최초의 여성 신학자로 인텔리 선각자였으나 당시 정치 상황이 그녀의 역동적 역할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1년 8개월의 짧은 청와대 생활을 청산한 후 일상으로 돌아와 여성지도자로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몸을 살랐다.
0…공 여사의 바톤을 이어받은 육영수 여사.
한국 현대사에서 그 이름 석자는 빼놓을 수 없다.
아마 역대 영부인 가운데 국모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육 여사와 이희호 여사 정도일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남편을 조용한 카리스마로 다스린 육영수야말로 ‘세상을 지배한 남자를 지배한 여자’라 할 수 있다.
0…비명(非命)에 가기 전까지 11년의 세월을 청와대에서 지낸 육 여사는 퍼스트레이디의 롤모델을 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민의를 듣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 앞으로 온 편지는 직접 읽고 답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나서 해결하는 등 민원 해결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재임기간 나환자의 손을 잡고 그들이 건넨 음식을 같이 나눠 먹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였다.
0…타계한지 50년이 되는 지금도 그녀가 이권이나 정실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사리사욕을 챙겼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다.
육 여사는 한국의 영부인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영부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는 훗날 아내를 생각하며 “그곳은 나의 유일한 낙원이요, 태평양보다 더 넓은 마음의 안식처”라고 회고했다.
0…박정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된 남편(최규하)을 따라 영부인이 된 홍기 여사는 250여일 동안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마음고생만 하다 떠났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신변을 압박해 들어오는 불안한 정치상황 때문에 부부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0…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무력으로 권좌에 오른 남편(전두환) 덕에 졸지에 영부인이 된 이순자는 주변에서 진정한 영부인으로 생각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뒤이은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은 그나마 자신을 숨기고 그림자처럼 남편을 내조함으로써 신비감을 자아냈다.
0…이어 청와대 안주인이 된 손명순 여사는 야당 정치인으로 온갖 고초를 겪은 남편(김영삼)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평생 동반자였다.
YS가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일 때 그녀는 남편 곁에서 성경을 읽어주며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조용한 내조에 머물렀고 올해 3월 95세로 타계했다.
0…한국 현대사의 거목 김대중(DJ)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단순한 아내를 떠나 DJ의 정치적 동지요,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여사는 마흔 한 살의 나이에 DJ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당시 DJ는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이 여사는 수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남편을 대신해 자식들을 키우며 가정을 돌보았다.
0…DJ의 야인시절부터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던 이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서도 살림을 단출하게 운영했다.
특히 당시 IMF로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을 감안해 대부분의 집기를 전임자가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썼다.
민주화와 인권, 여성운동에 활발히 앞장섰던 이 여사는 DJ의 평생동지로 곁을 지키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국모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0…현대의 대통령 부인은 남편의 잔일을 도와주는 단순한 신변 조력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국정운영에 대해 공동책임의식을 갖고 보이지 않는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지혜롭게 조용히 처신해야 한다.
0…그래서 국모는 아무나 될 수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한 자질과 품성, 지혜를 갖추어야 할 터이다.
지금 모국의 난감한 상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