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보증수표’ 고대

이용우(영문학과 77)

저는 충남 대전에서 출생해 1975년 충남고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습니다.(육사 35기).

당시는 군사정권이 득세하던 시절로 지방의 고교생들로서는 S대 법대, 아니면 육사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출세의 한 방편이었던 거죠.

그런데, 멋진 제복에 반해 들어간 사관학교는 저의 길이 아니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관학교 입학 후 4~5개월이 지나면서 저의 번민과 고민이 시작되었고, 입교한지 꼭 1년 만에 자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본의 아니게 재수를 하여, 아니 대입예비고사를 놓치는 바람에 3수를 하여 새로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저는 학번으로 치면 고교 동기생들보다 2년이 늦은 77학번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선택할 때, 남들은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고민한다는데, 저는 전혀 고민같은 걸 해본적이 없습니다. 그건 당연히 대 고려대였고, 고대 외에 다른 학교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려대야말로 석탑(Granite Tower)과 호랑이로 상징되는 호방한 학풍과 자유, 정의, 진리라는 민족대학의 지향점을 가장 선명하게 표방하는 최고의 대학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캠퍼스에 들어서면 그 웅장한 교문이 저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정면에 바라다 보이는 본관과 서관 시계탑의 위용에 눈물이 날 정도로 크나큰 자부심과 활활 타는 열정이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고대생 배지를 단 학생들은 어딜가나 서로가 친근하기 그지없는 일체감을 느꼈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프라이드 못지 않게 고려대의 학력 수준은 다른 어느 대학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고 눈부셨습니다.

다만,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인지라 걸핏하면 학교에 전투경찰이 진입해 최루탄이 난무하는 등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은 시절이었지만 지금도 꿈결에는 안암 캠퍼스를 거닐며 사색과 번민에 잠기던 그때가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아, 그시절이 다시 올 수 있다면…

저는 학교를 졸업한 후 해병대 장교를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첫 직장은 대기업인 H그룹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사한 부서에는 고대 출신 선배가 2명이나 있었고 제가 들어가자 너무너무 반색을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업무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이고, 회식자리도 자주 만들어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차츰 알고보니 그 회사엔 유난히도 고대 출신이 많았습니다. 최고경영자(CEO)부터 중간 간부급까지 요직엔 예외없이 고대 출신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역시! 고대 출신은 어딜가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업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거니와, 또다른 장점으로는 조직에 화합을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선배님들 덕분에 저는 첫 사회생활을 무난히 통과했습니다. 지금도 대기업과 정부, 정계, 금융계, 언론계 등 사회 모든 분야에는 고대 출신들이 요직에 두루 포진해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 아니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지 않습니까!

그후 저는 대기업 생활을 접고 언론의 길로 들어섰으며, 24년 전에 뜻한 바 있어 캐나다 이민을 결행했습니다.

낯선 땅에 이민을 와서도 저의 끈끈한 모교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고대’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뛰고 일체감을 느낍니다.

이민을 와서도 교민언론에 종사하다 보니 한인단체에 참석할 일이 많은데, 어딜 가도 고대 출신이라 하면 모든 분들이 우러러 봅니다. 말하자면 ‘인간 보증수표’라는 것이지요.

진정, 고대라는 브랜드 파워가 해외 이민사회에까지 이렇게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습니다!

가끔은 이민생활의 애환도 있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대 고려대 출신이다!” 라는 사실을 되새기는 순간 어딘가에서 힘이 불끈 솟는 것을 느낍니다. 이같은 감정을 저만 느끼는 걸까요?

사랑하는 교우님들, 우리가 비록 낯선 타국땅에서 힘들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대 고려대’의 이름 하나로 받는 그 수많은 축복들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소중하게 추억합시다. 교우님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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