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산책(162)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할 조성국 시조시인>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민초 해외동포문학상 시상식

그해 2005년 늦 가을이었다. 어느날 저녁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한국문협 회원인데 이 곳 아들 집을 방문하였다는 자기소개를 헸다.

오늘 한국 식품점에서 신문에 제가 발표한 시를 읽고 반가움에 전화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반가움에서 한국관 식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고 다음날 그 분을 만났다.

조 시인님은 문단의 원로 선배 시인으로 시조 보급을 위하여 전국을 순회면서 시조 강의를 하고 있는 명망이 높은 분임을 알게되었다.

그 후 이 곳에 계실동안 거의 매일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한국문단의 실태와 앞으로의 순수문학이 갈 방향에 대하여 허심 탄회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는 이민생활의 애로와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물었다. 얼떨결에 한 대답이지만 지금 생각을 하면 황당한 대답이었다. 즉 순수하고 진솔한 대답이었지만 부끄러운 독백에 자괴감을 느낀다.

즉 60이 될 때까지 동포사회를 위하여 열과 성의를 다하여 능력껏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보람차지 못했기에 60이 되면서 동포사회를 위한 일 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무엇일까를 고심하다가 자신과 조국과 민족을 위한 보람차고 명분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를 쓰고 우리의 동포 2세,3세대 및 전통적인 민족의 정체성 즉 Identity를 지속하게 함이 뜻이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전공도 하지 않은 시를 쓰게 되었다는 설명을 했다.

이에 캘거리 문인협회를 창립하여 문학의 불모지에 우리글 우리말의 중요성을 전하며 문협회원들에게 무언가 보여 준다는 뜻에서 시라는 것을 캐나다 캘거리 뿐 아닌 토론토. 밴쿠버, 에드몬톤 등 캐나다 전역의 신문에 발표를 함은 캘거리 문협회원들에게 무엇이고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을 일으키게 하고 싶은 마음이였다.

2년 텀의 회장에서 다시 재선이 되어 새로운 2년을 맞이 하고 있으나 어떻게 우리 글과 말을 고양할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는 말씀을 나누고 다음과 같은 동포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고견을 듣고자 했다.

즉 이 시의 인근 시에 제가 소유한 조그만 땅 20Acr 에 Lethridge의 Jaepanes 의 Community가 건설한 Jaepanee Garden 과 같은 Koresn Garden 을 건설하고 나머지 땅에는 한국 사람만이 묻힐 수 있는 무료 묘지로 사용함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듣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다음날 현지를 가보자 하여 그 땅이 있는 곳으로 갔었고 그 땅을 보시고 밴프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사이로 한국 관광객이나 타지 행락객에게는 훌륭한 쉼터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였다.

그런 나의 계획의 장단점으로 단점은 1.건설자금이 많이 소요된다. 2.이 타운에서 가까운 곳에 공동묘지 건설 허용문제 3.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 진다해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

장점으로는 1.한국인의 긍지를 드높힘에 자랑이 되고.2.모국에서 관광을 왔을 때 쉼터로 각광을 받을 수 있다.3이를 위하여 식당을 운영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할것이냐 등등 장단점의 고견을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일은 한 개인보다 국가에서 할 일이라는 점을 첨언하였다.

자기의 의견은 가족에게도 고난을 주지 않고 당신의 사후에도 남을 수 있는 일로 민초 해외동포문학상을 제정하여
해외동포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족의 정체성을 고양할 수 있는 문학상을 제정 운영함이 좋다는 고견을 피력하셨다. 아직 생존하고 있는 제가 저의 이름으로 문학상을 제정함은 합당치 않으나 가족들과 상의 다시 의논하자는 말씀을 드렸다

그 후 며칠간 숙고를 하다가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날 이 문제를 상의를 했고 전 가족이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견을 모아 한민족을 위한 Public cemetaey와 Korean Garden 건설은 없었던 일로 하고 다음해인 2006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나의 4번째 시집 상재를 위한 기념파티에서 동포 80여명을 초대 Grand central 중 식당에서 문학상을 제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2007년 부터 제1회 민초해외동포 문학상 수상자 시상식을 Calgary 에서 가졌다.

그 후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금년 18회 문학상을 시행하고자 유럽을 중심으로 한 공모를 받고 있다.

지난 생애를 뒤 돌아보며 이제 팔순이 훨 넘은 나이에 내가 얼마를 더 민족애를 지속할지 많은 노파심을 느끼며 내가 올바른 삶을 살아왔는가를 반추 할 때가 많음을 각인하며 남은 내 생애, 최선을 다하자 다짐하지만 얼마나 더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자탄을 할 때가 많다.

아울러 오늘에 이를 때 까지 조 성국 시인의 올바른 격려와 지도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 후 조 시인이 나의 문학상 운영회의 부회장으로 위촉하고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으며 2회 시상식 |때 중국 연변과 9회 문학상 시상식 때 몽골의 수도 울란바트로에 같이 방문하고 이곳 동포들과 우리 말과 글을 세세연연 지속적으로 지켜 나가자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자고 뜻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 주에 계속)
*민초 이유식 시인(한인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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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인뉴스 대표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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