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유당은 없는가
-캐나다 선거와 한인 정치인
*넬리 신, 해롤드 김, 이기석 후보…모두가 보수당으로 출마했다
세계 어디나 비슷하지만 선거 때는 특정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하게 된다. 후보자 개인이 좋아서 표를 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한다. 특히 캐나다처럼 다민족 사회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워낙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기 선거구의 어느 누가 후보자인지 모른 채 정당만 보고 투표를 하게 된다.
이번 9.20 연방총선에 우리 가족도 모두 투표를 했지만 선거구 후보자들의 면면은 모른 채 그저 지지하는 정당에 표시를 했다.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은 후보자 개인의 인품과 성향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지만 캐나다에선 웬만큼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것이 쉽지 않다.
0…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당의 대표가 누구냐이다. 각 당 리더의 역할이 70% 이상이며 여기서 정당의 승패가 판가름난다. 다음은 정당이고 후보자 개인의 자질은 세 번째 정도다. 특히 캐나다같은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당 바람(黨風)이 매우 중요하다. 당풍이 불어 정치신인들이 거물들을 제치고 당선되는 사례를 숱하게 목격한다.
3년 전 실시된 온주총선에서 정치신인 조성훈(Stan Cho) 후보(보수당)가 4선의 노장 데이빗 지머(자유당)를 여유있게 누르고 당선된 것은 보수당 바람이 휩쓴 덕이 크다. 당시는 보수당 간판만 업으면 거의 다 당선이 된 상황이었다.
이번 연방총선은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실시된 것으로 자유당은 한때 ‘명분없는 선거’에 거센 역풍을 맞았다. 트뤼도 총리는 야당(보수당)의 인기가 없을 때 다수당을 차지하려고 전격적으로 조기선거를 선언했지만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았다. 종전보다 단 3석을 더 얻었을 뿐이다. 에린 오툴 보수당 대표는 그나마 의석을 잃지 않아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변화 없는 이번 총선에서 애꿎은 한인후보들만 줄줄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2명(넬리 신, 해롤드 김) 정도는 당선권에 들 것으로 예측됐으나 여론조사라는 것이 허수(虛數)임이 드러났다.
0…이번 선거엔 한인 4명이 후보로 나섰는데, 3명이 보수당이고 1명이 NDP(신민당) 후보였다. 이중에 한명이라도 자유당 후보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현재 연방과 주(州) 정치 무대에서 활동중인 한인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보수당 소속이다. 임명직인 김연아 연방상원의원을 비롯해 조성준-조성훈 온주의원이 모두 보수당이다. 왜 이럴까. 한인사회가 좀 더 다양하게 파워를 발휘하려면 자유당 쪽에도 정치인이 나와야 할텐데 말이다.
수년 전 온주의원에 출마했던 김근래씨도 보수당 후보였다. 자유당 후보로 나선 한인은 2006년 온주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벤진(진병규)씨와 2014년 연방총선 자유당 경선에 도전했다 간발의 차이로 패한 조성용(Sonny Cho)씨 정도다. 당락을 떠나 한인들의 정치도전은 전체적으로 보수당이 훨씬 많다.
이는 아마도 한인들이 자유당에 대해 갖고 있는 진보 혹은 좌파성향 정당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자유당을 기피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들에게 많이 들은 ‘좌파=공산당=북한’의 그릇된 이미지로 인해 선뜻 자유당을 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0…캐나다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분류가 의미가 없다. 각 당의 정책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당이 중도진보 노선을 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진정당은 NDP이다. 그러나 NDP는 한계가 있다. 보수당은 보수우파 노선을 취하지만 수구(守舊)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극우정당은 수년 전 새로 생긴 국민당(PPC)이지만 이번에 1석도 얻지 못했다.
캐나다의 총선거는 국회격인 하원의원과 대통령격인 총리를 동시에 선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1표라도 이긴 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따라서 당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인정치 후보자들이 보수당 일색인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이번 선거에서 한인후보들이 모두 졌지만 다음엔 좀 더 다양하게 정당을 선택해 나서주면 좋겠다. 특히 멀리 밴쿠버에서 천신만고 끝에 한인 최초로 하원의원 입성에 성공했던 넬리 신의 낙선은 가슴 아프다.
그는 1년6개월의 짧은 기간동안 빛나는 의정활동을 펼쳤으나 NDP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개인의 역량보다 정당의 파워가 얼마나 큰지를 입증한 것이다. (사장)